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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가족사 본문
세종 23년(14대) 12월 3일, 세종이 태조의 계비 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홍천사(지금 덕수궁 뒤쪽에 세운 원찰)의 사리탑을 수리하고 경찬회를 베풀고자 했다. 반대가 극심하자, 세종은 "불탑이 기울어져 위태로우면 수리해 고치는 것은 예전에도 있던 사실이고, 수리해 고친 후 경찬회를 여는 것도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며, 또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폐하는데 비할 것이 아닌데도 대간과 모든 선비가 하나같이 통곡할 만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통곡할 만한 일이겠느냐. 경들이 이의 부당함을 간한지 오래였고, 나는 간함을 거절한 임금이다. 세번 간하여 듣지 아니하면 벼슬을 버리고 간다고 하는데, 경들은 어찌 가지 않는가"라며 빗발치는 반대 상소를 물리치고 경찬회를 베풀었다. 그렇다 옛날에 충과 효를 가를 때 부모에게 세번 간해서 듣지 않으면 울면서 따르는게 효요, 신하가 임금에게 세 번 간해 듣지 않으면 자리를 내놓는 것이 충이라 했다. 또 세종은 "비구니가 궁중에 드나들면서 공주로 하여금 머리를 깍게 해도 금지하지 못한 것은 나의 과실이다. 대저 임금의 허물을 읽고 짜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다. 그 부모들은 집에서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그 아들이 간하여 그치게 하지 못하면서, 조정에 와서는 남이 상소함을 가지고 허물을 탓하는 것이 옳은가"라며,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의 권위가 손상되더라도 솔직하게 의사를 밝히고 관철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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