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강연&칼럼/인문학 (14)
취코, 취하다 코딩에~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고, 더 유연해지고, 더 관용적이고,가족이나 이웃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눈매가 더 그윽해지고,더 생기발랄해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왕성해졌는가?
봄이왔다.얼음이 풀리고, 땅이 부드러워지고, 새싹이 돋고,푸른 잎이 펼쳐지고, 처녀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날 아침 산책이 그리웟 잠을 설칠 정도의 예민함파랑새 우는 소리에 전율을 느낄 정도의 예민함비오는 날 소주 한 잔 생각첫눈 내리는 날 아련한 예사랑의 생각
춤춰라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사랑하라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노래하라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일하라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살아라오늘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장자가 오래된 나무를 보고 쓸모 없는 나무여서 오래살뿐이라 하였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이런말이 있다. 모든 것은 쓸모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장자가 놓친건 그 오래된 나무가 사람들이 그것을 봄으로써 새로운걸 느낄수도 있고 그 큰나무가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언제까지 존재하느냐지내가 생각한 정의와 맞서 싸워서 이기면 그게 정의인거지옳고 그른것은 없다 그른것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만드는게 중요하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무엇을 원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성인들도 난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자신을 찾았을 뿐이다.
자공도 한낱 농부를 설득하지 못했다. 많은 나라의 군주와 실권자들을 좌지우지 했지만 배운 것 없는 시골사람은 설득하지 못했던 것이다.이 때 시골뜨기가 그대가 동해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나 또한 서해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니 나의 말이 어찌 당신의 이삭을 뜯어 먹지 않을 수 있겠소? 라고 설득하였다.무식한 시골 농부를 설득하려면 먼저 그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경이 양녕을 비난하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나의 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만일 차례대로 말한다면 이 자리는 진실로 나의 형 양녕의 것인데, 오늘날 내가 대신해서 온 나라의 봉양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일반 백성이라도 형제 사이에는 잘못을 덮어주고 잘한 것은 드러내주며, 불행히도 혹 죄에 걸리면 뇌물도 쓰고 애걸도 하며 모면하는 것이 사람의 지극한 정의인데, 하물며 내가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도리어 백성만도 못하게 형 하나를 감싸줄 수가 없겠는가. 경은 이 듯을 잘 알아서 여러 사람에게 타이르라. 장차 서울의 집으로 청하여 항상 만나봄으로써 우애의 도리를 다하겠다." 이후 김종서는 양녕의 불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앞장서서 세종의 의중을 다른 신료들에게 전했다.
세종 23년(14대) 12월 3일, 세종이 태조의 계비 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홍천사(지금 덕수궁 뒤쪽에 세운 원찰)의 사리탑을 수리하고 경찬회를 베풀고자 했다. 반대가 극심하자, 세종은 "불탑이 기울어져 위태로우면 수리해 고치는 것은 예전에도 있던 사실이고, 수리해 고친 후 경찬회를 여는 것도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며, 또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폐하는데 비할 것이 아닌데도 대간과 모든 선비가 하나같이 통곡할 만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통곡할 만한 일이겠느냐. 경들이 이의 부당함을 간한지 오래였고, 나는 간함을 거절한 임금이다. 세번 간하여 듣지 아니하면 벼슬을 버리고 간다고 하는데, 경들은 어찌 가지 않는가"라며 빗발치는 반대 상소를 물리치고 경찬회를 베풀..
세종은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반대하는 신하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면서 의지를 관철해 나갔다. 이것이 세종의 공론 정치다. 공론 정치야 말로 요즈음 흔히 말하는 소통의 정치라 할 수 있다.
[중용] 열렬함이라는 것 자체는 하늘의 도리요, 열렬함에 이르려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열렬함이라는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고 힘써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 조용히 도리에 적중하니 이를 갖춘 사람은 빼어난 사람이고, 열렬함에 이르려는 것은 좋은 것을 잘 가려내어 그것을 굳게 잡는 것이다. 그것을 널리 배우고, 그것을 따져가며 깊이 묻고, 그것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발게 가려내며, 그것을 독실하게 행해야 한다. 배우지 않는 것이 있을지언정 일단 배우기 시작하면 능해지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일단 묻기 시작하면 알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도를 얻는 차원에 이르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가려내지 않음이 있을 ..
하이데거는 인간 조건을 냉정하게 고찰한 다음 이런 명언을 남겼다. "실존은 굴욕적인 것이다." 또 다른 명언도 남겼다. "세계는 고뇌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제공할 것이 없다." 내가 외롭다고 처음 죽음을 생각했을 때에도,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잠에 들었거나,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려고 휴대전화를 바득바득 붙잡고 놓지 않을 때에도, 어쨌거나 나는 외로움 때문에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하겠다. 지옥같은 시간들, 진리들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산다. 자살하는 인간들이 최후까지 고민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 까뮈는 "흥미의 대상은 그 사실들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과다."라고 꽤 강조를 했다. 어쩌라고, 나는 이렇게 사는데,..